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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직위와 세계 2등 가라면 서운해
    카테고리 없음 2022. 1. 29. 08:55

     

    그런 잘못된 국민성의 하나로 나는 기회주의를 내세워 이미 글을 썼고, 이번에는 다른 국민성의 사례로 어느 모로 보나 지나치게 강한 한국인의 직위의식을 현재 내가 살고 있는 호주와 미국 사회와의 비교문화적인 관점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돈을 좀 벌었거나, 내가 좀 똑똑하면 분수를 넘어선 하나의 자리가 되어야 하고, 그래야 사람들이 인정하는 그런 사회가 정의롭고 공정하면 기적이다. 모든 한국인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국민 대다수가 그렇다면 나머지도 어쩔 수 없다. 너무 길어서 (1)과 (2)로 나눈다. 다음에 갈수록 심해지는 한국인의 수치심 부재 등 몇 가지를 더 거론하겠다.

    한국의 대기업 사장 P씨가 시드니 공항에 내려 입국 수속을 밟는 동안 짐을 뒤지는 세관원의 태도에 분노해 그 자리에서 바로 본국으로 돌아가 버렸다. 그 사건은 오스트레일리아의 주요 신문 시드니 모닝 헤럴드에 대서특필되었다. 영미 언론은 이러한 기사를 즐겨 보도한다.

    외교라인을 거쳐 사전조치를 취했다면 이 전 총재는 VIP 예우를 받고 편안하게 특별창구를 빠져나올 수 있었다. 한국에서는 실력자 저명인사에 호주의 큰 수입처인 대기업의 회장이라 말하지 않아도 그럴 줄 알았던 듯 그냥 들어온 게 화근이었다.

    영미 국가의 세관이나 사정 공무원은 우리와 다르다. 국내 외국인을 막론하고 상대방의 직위에 관계없이 부여받은 권한을 그대로 행사한다. 이 사건에서 배울 점은 많았지만 이 소식을 들은 한국 몇몇 사람의 평가는 빗나갔다. 그가 콧대 높은 '호주 놈'들에게 본때를 보여 왔다는 것이다. 같은 사건을 놓고 보는 두 지역 간의 웃을 수 없는 인식 차이였다.

    내가 시드니의 한 호간 기업가 단체의 간행물인 작은 뉴스레터의 편집장으로 있을 때였다. 간행물 제작자 명단 칸 아래쪽에 양측 임원의 이름을 자문위원 자격으로 넣었다. 호주 측 기업인에게서는 전혀 문제가 없었지만 한국 국영기업의 현지법인장 한 명은 격분했다. 그가 보기에 업자인 이들과 함께 명단에 자신의 이름이 올라 있는 것에 불만이 있다.

    세계 이등가라면 아쉬워하는 한국인의 강한 직위의식은 지금도 크게 변하지 않았다. 내가 잘 아는 호주 학자의 얘긴데, 자기가 아는 한국인 교수가 고국으로 돌아온 이유는 아이들이 노동자 가정의 아이들 틈바구니에 섞여 놀기 싫어서라고 하더라고. 물론 훌륭하다는 식이다.

    호주에는 부자와 고액 연봉의 고급 전문가들이 많이 모인 높은 지역이 있는데 부촌, 가난한 마을을 막론하고 어디에나 미장원, 트럭 운전사, 전기공, 공장 노동자, 청소부, 소상인들이 뒤섞여 살지만 그것밖에 눈에 띄지 않는다. 이들 블루컬러의 돈벌이는 장차관이나 교수 못지않게 호화 주택, 자동차, 심지어 요트를 갖고 사는 경우가 많다. 하물며 아이들끼리 노는데 부모의 직업에 따라 따로 노는 것은 흔히 볼 수 없다.

    ●환경미화원으로 나선 신부

    ◆강한 직위의식을 부추기는 우리 사회의 관행은 여전히 많다. 가까운 예가 존칭 사용법이다. 이 회장, 이 총장, 이 장군, 이 과장, 이 선생님에게서 당신을 빼고 직함만 부르는 방법, 예컨대 이 선생님, 미스터 이 과장, 이 원장, 이 씨, 이 선배, 형, 아저씨, 할아버지, 당신 등 천차만별이다. 여자라면 여사, 부인, 선생님, 미세스 아무개, 아무개, 할머니, 아주머니 등이 있다. 그냥 호칭인데 이렇게 차이를 두는 기준은 뭘까. 신분과 돈과 필요하지 않은가.

    영어로 사망하다는 Died가 아니면 Passed away이다. 우리는 사망하다 별세하다부터 타계하다 운명하다 소천하다 열반에 들다 서거하다 등 수십 개의 동의어가 가능하다. 어떤 때 상대를 정중하게 높일까, 아니면 반대로 마음대로 부를까. 나이 외에는 직위와 돈, 그것이 주는 힘과 이른바 명망이다. 미스터가 어떠냐고 반문하는 사람에겐 다 같이 부를 거냐고 물어야 한다. 이는 언어가 아니라 인간차별의 문제다.

    ●"한국도 이제는 달라?" 그렇다면 현재도 흔한 재벌 가족이나 강자의 '왕따' 문제란 무엇인가? 예외라면 표가 필요한 선거 때의 출마자일까. 얼마 전 한국 언론에 길게 소개된 한 가톨릭 신부의 경험담을 인용해 보자. 직위가 낮은 사람의 삶은 얼마나 고달픈가가 주제였다. 그는 자진해서 청소부로 일하며 하루를 보내며 닥치는 대로 만난 사람들에게서 겪은 신부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멸시를 경험했다는 것이다. 인권이니 남을 배려하는 사회니 하는 말은 그저 립 서비스(Lip service)일 뿐이다.

    영미 사회, 특히 호주는 그런 나라가 아니다. 살아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작은 지하철역에서는 역장이 화장실 청소를 하고, 잘생긴 백인 남자가 식당이나 기차 차량, 큰 빌딩 안에서 쓰레기를 치우는 일을 하는 것이 보통이다. 교회에서 점심 식사 후 백인 목사가 부엌에 들어가 설거지하는 것을 가끔 본다. 실직한 백인 워킹맘이 가정부가 되는 것도 대수롭지 않다. 죽지 못한다고 한탄하는 사람은 본 적이 없다(물론 이런 3D 잡사는 이민자가 거의 독점하기는 하지만). 직위 중심의 사회가 아니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런 사회풍토에 빨리 적응하는 것이 한국인으로서는 쉽지 않다. 나 자신도 고국에서 익힌 직위의식 때문에 호주에 처음 와서 바보짓을 했다. 공부하면서 쉽게 할 수 있는 일은 주말에 쇼핑센터에서 물건 나르기, 진열 등 가벼운 노동이지만 체면 때문에 할 수 없었다. 내가 예전에 어떻게 지냈던 사람인데 그럴 수 있는지 아는 사람이 보면 어쩌나 하는 우려 때문이었다. 상당수 한국 이민자의 현지 정착이 늦어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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